[072422]주일예배-천명적 결단 뒤에 오는 인생(룻 2장)
7/24/2022 주일 메세지 [이 덕신 목사]
본문 : 룻(Ru) 2장
제목 : 천명적 결단 뒤에 오는 인생
The Life After A Providential Determination
서론
지난주에는 분별력과 결단력이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오늘은 룻 2장 말씀 가지고 천명적 결단 뒤에 오는 인생이라는 제목 가지고 말씀 전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국의 지하철에 엄청난 사람들의 물결과 뛰어가는 사람들 보면 무슨 일이 저렇게 바쁠까? 생각이 들어요. 내가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까? 신앙인들은 때로는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한 날 한 날 사는 인생이 아니고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보존하시고 행복으로 안내하시는 다시 만난 그리스도를 높이시는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삶이라는 거에요. 인생은 언약 안에 살아가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어요. 결코 많이 배웠든, 많이 가졌든, 높은 자리에 있든 행복할 수 없어요. 이런 것들은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알 수가 있어요.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 우리를 만드신 자를 만날 수가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릴 때는 엄마, 아빠의 품 안에 있어야 가장 행복합니다. 그것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참 부모가 없으면 인간은 똑똑한 것 같아도 모자란 것이 인간이잖아요. 사람이 들어간 곳마다 자연만물이 다 망가지고 있어요. 찰스 다윈이 연구했던 갈라파고스 섬이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는데 옛날의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고 옛날에 있었던 생물 절반 이상이 사라져버렸어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맨들이 들어와서 전부 다 인간의 손으로 파괴시켜버렸어요.
1. 이성보다 영성을 추구한 룻
오늘 룻을 보면서 우리가 적용해야 하는 것이 첫 째 인간의 이성과 지성보다도 영성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쓰는 지혜는 소위 꾀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자를 선택할 때 우직하고 꾸준한 사람, 지속하는 사람. 일심; 처음의 마음과 중간의 마음이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이 더 마음이 가더라구요. 룻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분별력과 결단이 참 바랐어요. 오늘 여러분 중 1부 예배 들으신 분은 알겠지만, 제목이 천지개벽의 결단이에요. 천지를 개벽할만한 결단을 하라는 거에요. 지난주에 제가 분별력과 결단력으로 했고 지금 이 설교도 상당히 오래 전에 준비 된 설교입니다. 룻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모압 여자였는데요 찾아온 총각을 만나 국제결혼을 했어요. 2세들은 언어가 통하니까 괜찮은데 1세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죠, 문화가 통하지 않지, 여러 면에 통하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계속 가정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룻이 국제결혼을 했지요. 그런데다가 남편이 죽었어요. 이 때가 기회다. 이 때 도망가서 자기 동족하고 결혼하면 문화차이는 없을 것 아녜요? 그렇다고 남편 집에 유산이라도 많고 뭔가 미래가 있는
가정 같으면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죠. 생산 할 기회도 없이 남편은 죽었어요. 이 때 시엄마가 ‘나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간다. 너희들은 좋은 짝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라’고 권면했어요. 이 때 큰 며느리 오르바는 갔어요. 둘째 며느리 룻은 결코 엄마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어요. 엄마의 권면을 무시한 채 더 강한 말로 인간적으로 말하면 사랑의 고백을 한 거죠. 인간적으로는 룻에게 아무 소망이 없어요. 그런데다가 또 다른 나라로 가야되니 더 험한 길로 자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좁은 길이지만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우리 중직자, 장로님들은 조금 더 신앙 뿌리를 깊게 내려야 돼요. 좀 더 깊게 하나님과 교제를 해 보세요. 살 길이 여기에 있고 승리의 길이 여기에 있고 여러분 자녀들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주는 통로가 바로 이 언약 속에 있는 거에요. 룻은 인간적으로는 자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시어머니, 나오니가 아닌데 나오미를 붙잡은 거에요. 이 내용은 지난주에 했죠.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물면 나도 머물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고, 어머니와 나는 하나라는 거에요. 특별히 나중에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어요. 룻은 자기 운명을 개혁한, 바꾼 여인이라고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어요.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십계명에 보면, 인간으로써 최초로 해야 되는 다섯 번째 계명이 뭡니까? 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죠. 4계명부터 10계명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죠. 그 중에 5계명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랬어요. 사람이 부모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 부모를 공경함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인간관계 최초의 언약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천륜이고 인간의 상식이고 인간의 도의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너무 완악해서 지금은 자기만 사랑하잖아요. 이와 같은 삶의 자세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룻은 그리스도, 그리스도, 복음, 복음, 세계복음화 이런 단어는 안 썼지만, 그의 삶의 여정을 보면 완전히 복음 속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2장에 죽은 남편과 어머니를 선대했던 것을 다 들었다고 말한 보아스의 말처럼 룻은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거의 다 내게 이익이 있으면 좋아하고 손해가 되면 멀리 하고, 거의 이해관계로 사람을 대하기가 쉽습니다. 룻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와 인간의 도리적인 면에도 조금도 손색없이 자세를 취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를 지으셨고 머리카락까지도 세시는데 우리의 마음도 아시고 우리의 삶을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이제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갔는데 도착해 보니까 전적인 은혜의 시간에 도착한 거에요. 사람은 자기의 열심과 성실로 산다고 해서 자기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1장 21절에 보니까 베들레헴에 추수 때에 도착했어요. 그게 바로 카이로스라는 거에요. 똑같은 24시인데 하나님의 특별 은총이 임했던 시간표, 카이로스 시간표를 딱 맞이하게 되는 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를 사랑 한다면 여러분이 받은 축복의 천 배를 전달해 주기를 소원한다면, 여러분의 후대들에게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는 신앙생활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수 때에 베들레헴에 도착했는데 룻이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먹을 것도 없는데 가만히 있으면 뭐 할꺼에요. 룻은 현실을 잘 파악했어요. 현실을 현실로 볼 줄 아는 자가 균형 잡힌 신앙인입니다. 룻은 추수 때에, 나의 현실은 먹을 것이 없다. 원망치 않고 불평하지 않았어요. 낙심도 안 했어요. 그 때 자기가 아는 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삭을 주워서 살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어머니한테 물었어요. 여러분 기독교인 며느리라면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시어머니를 잘 모실 줄 알아야 돼요. 자기 혼자 가도 되는데 엄마한테 허락을 받고 갔어요. 참 그리스도인들은 균형 잡힌 정서, 균형 잡힌 이성, 균형 잡힌 지성, 균형 잡힌 영성, 모든 것이 균형이 잡혀야 돼요. 룻은 균형 잡힌 여러 상태의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아름답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상태도 굉장히 균형이 잡혀 있어요.
2. 만남의 축복의 증인(룻 2장)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런 룻에게 만남의 축복을 증거하셨습니다. 다 좋은 사람 만나고 싶죠. 그런데 내 맘대로 만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룻이 가서 이삭을 줍는데 보아스라는 남자를 만났어요. 보아스는 어떤 사람인가요? 마태복음 1장에 5절에 보면 살몬과 기생 라합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살몬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정탐할 때 보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에요. 여호수아한테 인정을 받았으니까 인재죠. 여리고에서 죽을 위기에 라합을 통해 구함을 받았죠. 그 기생 라합이 아내가 된 거에요. 이 보아스도 엄마가 술집 여자였다니까요. 그런데 술집 여자로만 보면 안돼요. 언약을 잡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할 줄 아는 선별력이 있는 영적인 제자였어요.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함부로 정죄하면 안돼요. 이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고 유력한 자라고 했어요. 굉장한 부자고 유지라는 말이에요. 보아스는 인품도 좋았고 신앙도 뛰어났어요. 하나님 중심의 사람은 모든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언약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도 전부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갔는데 성경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갔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연이 없고 다 하나님의 필연이요 당연이요 절대적인 만남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룻2:4에 보니까, 보아스가 자기 밭에 와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기를 원하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일꾼들이 ‘여호와께서 당신에게도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랬어요. 얼마나 인품이 좋아요. 사장이 나타나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에 하나님이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까 보아스가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을 일꾼들도 알고 있다는 거에요. 복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 줍니다. 보아스가 보니까 모르는 소녀가 한명 있거든요. ‘누구냐?’ 그 때 일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삭을 줍겠다고 해서 주으라고 하니까 아침부터 와서 저렇게 열심히 줍네요.’ 좋게 말을 했어요. 복음의 사람들, 복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표현할 때 이렇게 좋은 점을 말해야 돼요. 보아스가 수퍼바이저가 하는 말을 듣고 ‘내 딸아’라고 불렀어요. ‘너는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서 주워라. 그리고 목마르면 저 남자들이 떠 온 물을 마셔라’ 이렇게 자상하게 보호해 주는 말을 했어요. 사실은 보아스는 그리스도 예수를 표현하고 룻은 저와 여러분 같은 성도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그 룻을 보호해 준 거에요. 그러니까 룻이 엎드렸어요. 바라크라는 단어가 복인데 원래 엎드린다는 의미에요. 여기서 엎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나 왕한테 하는 거에요. 엎드려야 돼요. 정말 응답 받고 싶으면 입을 닫고 자기 주장하지 말고 엎드려야 돼요. 코람데오! 룻이 자기를 표현하기를 ‘나는 이방여인인데 이렇게 나한테 은혜를 주시고 돌봐 주십니까?’ 은혜를 깨달은 거에요. 룻이 ‘당신의 하녀 중 한 사람과 같지도 않아요.’ 당신의 하녀만도 못하다며 감사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보아스가 밥 먹다가 ‘이리 와서 이 떡 먹어! 초에 찍어서 먹어’ 이런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삶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보아스가 소년들에게 ‘룻이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다발에서 이삭을 조금씩 빼서 바닥에 던져 놔’라고 말했어요. 룻의 인컴이 높아지는 길까지 가르쳐 주는 거에요. 합법적으로 양심에 찔리지 않도록 배려를 했어요. 이 정도면 룻은 복을 받은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결론입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결단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대 인생을 위해서 여러분 가문의 흐르는 운명에서 해방되어지는 축복의 결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드립니다. 인생의 목적을 다른 데 두지 마시고, 생명 살리는 것과 교회 살리는 것과 그리고 후대를 바로 양육하는데 초점을 맞추시길 바랍니다. 기왕 신앙 생활하는 것 비실비실하게 하지 말고 충성된 자로 사명자로 그리고 사역하는 믿음의 일꾼으로 신앙생활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 들은 식구들에게 주의 용사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시대에 말로만 파수망대가 아니고 사실적으로 안테나도 되게 하시고, 파수망대, 치유하는 영적 의사, 보내신 정권대사로 축복하옵소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