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322]주일예배-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시 10편
3/13/2022 주일 예배 메세지 [이 덕신 목사]
본문 : 시(PS.) 10 편
제목 :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Arise, LORD
서론
우리는 누구나 다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지요? 그래서 인생을 고뇌의 길이라고 말도 하지요. 여러분 개인은 어떤 고난 가운데 있나요?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계세요? 주로 말하자면 경제 고난, 건강, 가족 불화, 부부 관계 및 자식과의 관계, 또 이웃이나 지인들과의 관계도 고난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약한 우크라이나가 강한 러시아에 침략을 받고 있는 고난을 생각해 보세요. 어린 아이들까지 많이 죽어가고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고난은 아주 고급스러운 고난이에요. 우크라이나 정 선교사님 집에 한 5일 있으면서 보니까 가사 일을 도우러 오신 50여세 두 분이 와서 수고해 주시더라고요. 가정의 모든 가사 일을 하루 종일 8시간씩 하시더라구요. 제가 조심스럽게 얼마를 드리냐고 물었어요. 두 분이 하루 종일 $15, 개인이 $7.5씩, 그런데 조금 더 드린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직 젊으신데 일자리가 없으니까 하루에 $10 벌려고, 지하실, 1층, 2층 다니며 정말 깨끗하게 청소해 놓으셨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가난한가 알 수 있죠. 그런 나라가 전 세계에 절반 이상이 넘을 거에요. 그리고 병원에 가 보면 불치병 환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경제 문제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다. 건강이 안 좋다. 이런 마음속에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해요. 걸을 수 없는 질병 속에 있는 환자들, 누워서만 있는 환자들 등에 욕창이 생겨 구멍이 뚫려 있고 버러지들이 득실거려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정리해 보면, 전쟁 앞에 있는 우크라이나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시겠지만, 그건 내 기준에서의 문제지,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포화가 터지는 전쟁의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 봐요. 생명이 지금 왔다 갔다 하는데, 지난 날 고민했던 것들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 헛된 고민이었어요. 예수님은 온 인류를 보면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문제 속에 있기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야 내게로 와라 내가 너의 인생을 쉬게 하신다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마11:28) 문제가 오면 불신자들은 인본주의로, 자기 힘으로, 경험으로 뭔가를 활용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죠. 그런데 믿는 사람들도 아직 체질이 안 바뀌고 복음의 깊이가 없으면 사실 불신자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우리를 오늘도 불러 가시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를 복음 안에서 그 축복을 체험시키려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거듭난 자는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오면 어떤 사람은 몸부림치다가, 어떤 사람은 즉시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옛날보다 좀 더 뜨겁게, 진실하게 하나님 편에서 신앙생활 하기를 소원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깊이에 들어가려면 뭔가 정신적 고난이나 육신적 고난이나 영적 고난이나, 고난을 체험해 봐야 신앙의 깊이에 들어갈 수 있어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으면 불신자나 마찬가지에요. 현실 앞에 어려운 일을 인본주의로 해결하려는 마음이 사실은 불신앙의 마음입니다.
1. 극심한 고난중에 있을 때
우리에게 일상적인 어려움보다 극심한 고난 중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평상시에도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어려움이 올 때 그 어려움을 가지고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공식적으로 어려움, 위기, 고난이 왔을 때, 그리고 사건과 문제가 터질 때 축복이라고 말하죠. 갱신의 기회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요, 기도할 수 있는 기회요. 그래서 문제는 문제가 아니고 축복의 문입니다. 거기까지는 이해 할 수 있는데, 오늘 시편 10 편 다윗의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까지 엄청난 고난을 받았잖아요. 장인 사울 왕으로 말미암아 12년 동안 피신 생활을 했어요. 그 인생의 말년에 가서도 아들과 신하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참 어려운 일을 많이 당했어요. 다윗이 너무 너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오늘 시10:1에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극심한 어려움 속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 다윗에게도 응답이 없어요.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금방 다 응답이 오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문제에는 금방 응답이 오지만, 어떤 문제에는 우리가 구하는 것에, “NO" 반대의 응답이 오는 것도 있어요.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응답도 있어요. 제가 보니까 기도한지 6-7년만에 응답 된 것도 있고, 40여년 만에 응답된 것도 있고, 옛날부터 기도해 왔던 것들이 때를 따라 시를 따라 응답이 왔어요. 그런데 극심한 어려움 속에 있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요.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셨습니까. 안 보인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시를 제목을 붙이기를 탄원시라고 해요. 하나님한테 탄원하는 거에요. 아픔을 호소하는 거에요. 여러분들 속에 말 못할 큰 고난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치병 걸려서 장기 입원한 사람, 경제 위기 속에 부도나거나, 실직하는 것 가정 속에 위기죠. 가끔씩 보면 살고 있던 집을 잃고 나와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여러분들의 인생 여정에 그처럼 정말 어려웠다 하는 여정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 그 때도 함께 하셔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찾아오는 문제 앞에 기뻐하셔야 해요. 그 때에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우리 인생의 주권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잖아요. 그 하나님이 이끄시기 때문에, 내 힘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에요. 신자들의 인생을 말합니다.
2. 악인들의 모습(시10:2-10)
그런데 오늘 4절에 악인이 나오는데 불신자에요. 불신자의 인생은 그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하는 인생이에요. 이 사람을 악인이라고 했어요. 오늘 시편 10편의 저자는 신자의 고백이에요. 자기의 삶에 어려움이 왔을 때,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십일조도 넘치게 하고 헌신했는데 왜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거에요. 그래서 탄식하는 거에요. 지금 이런 어려움 당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 안 보이십니까? 숨으셨나이까? 그러니까 그동안 새벽예배 통해 배우고 들은 내용, 구원받은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안 보이는 거에요. 임마누엘도 모르겠고, 그리고 여호와 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했는데, 나의 갈 길을 모르겠고, 계속해서 여호와의 이름은 기억나지만 도무지 그 이름이 체험되지 않는 거에요. 아브라함이 체험했던 여호와 이레, 도무지 미래가 없어요. 여호와 평강은 배웠는데, 마음에는 평강이 없고 염려, 근심, 두려움밖에 없어요. 자식을 잃어버린 것도 고통인데 온 몸에는 피부병으로 고통당하는 욥을 생각해 보세요. 엘 샤다이도 배우고, 여호와는 체바오트,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배웠는데, 도무지 내 개인적인 인생은 고난길에 있는 거에요. 아도나이, 하나님의 이름도 부르기 힘들어 주라고 부르는데, 주는 커녕 아무런 하나님의 효력이 내 인생 길에 나타나지 않아요. 그들의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보면 너무너무 잘 되는 거에요. 3절에 보면,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욕심이 가득 찼는데 그 욕심대로 되는 거에요. 돈도 잘 벌리고, 건강하고 잘 되는 거에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1절을 고백한 사람은 신자이고, 악인은 누구냐? 자기 소욕을 자랑하고 여호와를 배반하는 자에요. 입을 열어 교회를 욕하고 목회자를 욕한다거나... 하나님을 등을 지는 표현을 하는 거에요. 5절에,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7절에,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그러면서 11절에,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악한 행위를 하나님이 모른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존재는 알아요. 그리고 입으로는 믿는 다고 말해요.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람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여호와는 나의 로이요, 체바오트요. 이것이 믿어지면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내 속에 있는 믿음이 입술로 고백될 줄로 믿습니다. LA에 이 장로님 아들이 불치병에요. 이번에 지인을 통애 들은 바로는 그 아이의 생명은 기로에 있는데, 그 가족의 신앙은 완전히 180도 바뀌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문제를 만나 봐야 진짜 신앙을 알 수 있어요. 여러분! 전도해 보면,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 ‘하나님 계시죠’, ‘하늘님이 비를 내려 주시니까 농사 짖고 잘 살잖아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선포하면 반응이 반대하는 쪽으로 나와요. 사단이 그리스도 못 듣게 하는 거에요. 이 번 주례하면서 그리스도를 선포했어요. 200여명 참석했는데, 신자들이 60% 된다고 했어요. 예식인데도 그리스도를 선포하니까 아멘 소리가 나는 거에요. 우리 형편, 실수, 경험 모든 것들을 초월하신 분이 하나님이 신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절, 도덕, 능력을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에요. 누구에게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느냐? 그것을 바라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피가 없이는 유월절, 마귀의 권세를 뛰어 넘을 수가 없어요. 그 피만이 흑암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도덕, 윤리, 매너 이런 것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복음 속의 진정한 진리,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여 복음 속에 모든 것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체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종교생활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음 생활은 못 합니다.
3.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는 12절에,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여기서 가난한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려움도 없어요. 진짜 기도할 것은 여러 가지 재앙 속에 갇혀있는 불신 가족, 형제들을 위해, 우크라이나 땅을 위해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푸틴이 동방정교 신자에요. 넓은 의미의 기독교인이에요.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14절에,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17절에,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18절에,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세상에 속한 자는 누구를 말하는 거에요? 사단도 말하고 불신앙의 세력이 주의 자녀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16절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16절,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어려운 일이 찾아올 때 거부하지 마시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로 삼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대로 내 인생이 여러분의 생각대로 잘 된다고 기뻐할 것도 아니고 잘 안된다고 슬퍼할 것도 아니고, 진짜 기뻐할 것은 죄인이었던 나에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찾아 오셔서 새사람 되게 하신 구원의 축복에 기뻐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어두움이 빛을 이긴 적이 없고, 불신앙이 신앙을 이긴 적이 없고, 비 진리가 진리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주간도 하나님 말씀과 기도와 영혼 사랑하는 현장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복된 한 주간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생명이 주께 있고 생명의 연수가 주께 있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가정의 행복이 주의 손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후대들의 인생 여정이 주의 주권 아래 이루어져 가는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믿을 보겠느냐 하셨던 주님, 우리 모두에게 더 큰 믿음 주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축복하옵소서.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