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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권세에 대한 논쟁 (마 Matt. 21:23-32) 시카고하나로교회 이덕신목사

2021-10-05

[10032021]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큰 아들이 우리 내 식구가 찍혀 있는 옛날 사진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포인트를 하고 갔습니다. 6년 전에 같이 찍은 사진과 지금 찍은 사진이 많이 틀립니다. 세월이 가는구나!하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고동치는 심장도 멈출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기다리는 것은 그렇게 사모하는 물질이 아니고 성공이 아니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찾아오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가 지혜롭고 철든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것처럼 육적인 삶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 사단의 하는 짓거리입니다. 그래서 2021년 10 월 3일 오늘부터 여러분 인생 승리의 길을 꼭 붙잡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 승리의 길은 바로 그리스도 복음을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속에 살아야 합니다. 복음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삶이 복음에 의해 이끌림을 받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분은 이미 복음 속에 있기 때문에 of the Gospel입니다. 그리고 더 한다면 우리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몸에 한계를 느껴 세상의 일은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은 나이 80,120세가 되어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 복음의 개인화
1) 목적이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의 질문
① 예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찾아와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묻습니다. 잘 몰라서 질문하는 것은 좋지만 어떻게 하던지 예수님을 넘어뜨리고 음해해서 감옥에 가두고 죽이기 위한 질문을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 속에는 이미 정치꾼들의 야합이 있었습니다.
② 그동안 3년 반 동안 예수님은 갈릴리 중심으로 가난한 농부와 어부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 속에서 앉은뱅이를 고치시고 약한 자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증거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예수님을 제거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③ 그런데 모든 정치, 경제가 발달된 수도인 예루살렘에 들어왔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의 문화를 좋아하고 자신들의 신분을 누리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 하나님인 줄 알면서 그 종교 지도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가르칠 수 없는 영적인 말을 예수님이 하시니까 그 권위를 누가 주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2)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①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직답을 피하시고 요한의 세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이 그 자신의 권한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한 것인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그들이 종교 지도자들이니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세례 요한을 높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는데 해방의 길은 어린 양 피를 바른 그 날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 받은 줄 믿습니다.
① 사 7: 14 예언 따라오신 줄 믿습니다.
②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예수라하라고 했습니다(마 1: 21). 그 이름으로 ‘그의 백성들을 죄 가운데서 해방할 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③ 목수의 아들로 오셔서 나사렛에서 자라시다가 30세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선포한 공생에 시작이 30세입니다. 때가 차매 제자들을 가사랴 빌립보에 데리고 가셔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질문을 하십니다. 똑바로 알고 따라다니는지 물어보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이렇게 대답하니까 예수님이 깜짝 놀라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하시며 엄청 기뻐하셨습니다. 그런 고백을 한 베드로도 믿음이 성숙하지 않으니 자신에게 어려움이 오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부인했습니다. 자기중심입니다.
④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40일 동안 쫓아다니면서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갔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면 네 어린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내일을 도와 달라고 예수님이 세 번이나 부탁하셨습니다. 아무에게나 부탁한 것이 아닙니다.
⑤ 베드로가 깨닫고 감람산까지 따라가고 그리고 500명이 예수님 승천하는 것을 봤는데 120명만 약속의 말씀 따라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약속의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가 다락방은 교육관 정도 크기고 그곳에서 120명이 뜨거운 날씨에 언제 올지도 모르는 성령을 말씀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냄새 나고 후덥지근하겠습니까? 그곳에서 열흘동안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겠지만 열흘동안 기다리다 베드로는 불같이 뜨거운 성령을 받고 설교를 제일 먼저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호주머니에 가진 것이 없다면 누구에게 줄 수 없는 것처럼 복음이 내 것이 아니면 아무런 복음의 힘을 남에게 보여줄 수 없습니다. 내가 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속에 참된 구주로 모시고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이 내 인생의 승리의 길 인줄 믿습니다. 
 
2. 우리는 모두가 다 회개해야 합니다.
1) 두 아들의 비유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에게 포도원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맏아들은 일하러 가겠다고 말만 하고 실제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러자 둘째는 싫다고 말한 뒤에 나중에 돌이켜서 일하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기쁘게 한 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습니까? 둘 다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다 같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모르면 다 똑 같습니다. 이제 비유를 말씀하시고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 보다 빨리 천국에 갈수 있다고 하십니다. 둘째 아들은 가다가 마음을 돌이키고 포도원에서 일을 해서 낫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완악하게 고집을 피우면 세리와 창
 
높였습니다. “자 우리를 구원할 자가 오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세례 요한이 제일 먼저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까지 말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을 높이니까 “나는 망해야 되고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했습니다. “나는 저분의 신 끈도 매어주고 풀어줄 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세례 요한의 사역이 예수님을 증거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또 세레 요한의 사역이 자신의 권한으로부터 한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에 극단주의 세례 요한의 제자들로 소란이 될까봐  대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진퇴양난 속에 있었습니다.
 
3) 우리는 먼저 복음의 개인화가 되어야 했습니다.
나는 목회하셨다는 목사님 사모님을 만나면 복음의 예수 그리스도 모든 재앙을 면하고, 하나님 만나는 길! 사단권세 이길 수 있는 길, 저주 원죄 해방을 표현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게 많지 않음을 교제속에 느낍니다. 한 마디로 사람을 살려서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죽은 자를 살려서 생명 가진 자로 애기 키우는 것처럼 믿음을 키워서 그들로 하여금 세계 복음화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이 확실합니다. 여러분들의 정체성도 확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종교 지도자들의 정체성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복음이 개인화가 안 되면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헷갈리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정체성이 없으니까. 기분 따라 이번에는 이 사람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이번에는 이 목사님 말씀이 맞는 것 같고 자꾸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남는 인생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 앞에 조금 멸시를 받아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는다고 디모데에게 말을 했습니다. 복음 없는 남편과 형제들을 보면서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받지만 참된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줄 믿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결국은 ‘나 중심' 이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강단의 설교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타파하고 복음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생명 없는 종교 생활, 구원받지 못하고 하늘 보좌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교회 열심히 다니지 말고 복음 속으로 들어오라고 설교하셨습니다. 복음 모르고 교회 가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인사하고 점잖은 척해봐야 네 인생 저주의 권세, 가문에 흐르는 권세가 네 육체를 지키느냐? 네 경제생활을 지키느냐? 네 자녀를 지키냐, 못 지키지 않느냐? 하고 예수님이 복음적으로 하셨습니다.
 
4) 예수님은 창3장 타락한 인간 앞에 예언 따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줄로 믿습니다.
 
기가 더 천국에 빨리 간다고 하십니다.
 
2) 포도원 농부 비유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고는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납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 주인은 세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종들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박해합니다. 참다못한 주인은 아들을 보냅니다. 농부들은 그 아들을 환영하기는 커녕 그를 죽여서 그 포도원을 영원히 소유할 음모를 꾸미고 그대로 실행합니다. 이 이야기 끝에 예수님은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물으십니다. 그들은 그 악한 농부들을 심판하고 신실한 다른 농부에게 포도원을 맡겨야 한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시118:22-23절을 인용하시면서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믿음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건축자들은 집을 지을 때 성경에 보니까 모퉁이 돌부터 시작한답니다. 그 돌이 가장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건축자가 버렸는데 그것을 주워서 집을 지었는데 건축자가 지은 집보다 이 집이 더 좋았습니다. 그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우리 눈에는 귀하나 전문가는 못 쓰겠다고 버렸습니다. 전문가가 볼 때는 못쓰지만 예수님이 볼 때는 주로 말미암아 머리돌이 되어 좋은 집이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남루합니다. 그래서 율법자들이 우리처럼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롬7:21).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연이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말합니다(롬8:2)
며칠 있으면 돌아가실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 가문의 저주, 체질 속에 있는 모든 재앙, 육체의 질병, 경제 문제, 모든 문제를 십자가 상에 다 해결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운명하신 줄 믿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3일 만에 부활하셔서 불신앙 하는 사람에게 옆구리를 보이시며 찔린 못 자국의 흔적을 보이시고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그 말을 믿은 사람은 120명 밖에 없었습니다. 약속의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을 받고 하늘의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 120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의 개인화와 복음의 교회화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로 교회는 복음 충만한 성도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세계화가 되어야 합니다. 30만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하는 237과 5천 종족의 복음의 파수꾼으로 세워 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병든 세상에 참으로 영적의사로 세워 지기를 바랍니다. 참된 지도자가 없는 세상에 우리의 후손들이 영적 서밋, 참된 지도자, 리더로 세워 지기를 주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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