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쓰시겠다면...(마 Matt. 21:1-11) 시카고하나로교회 이덕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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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쓰시겠다면...(마 Matt. 21:1-11) 2021년09월12일
[09122021]주님이 쓰시겠다면…(마21:1-11): 이덕신 목사
오늘 본문(마21:1-11)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5일 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성금요일을 앞두고 있는 ‘종려주일’입니다. 일년에 한 번쯤 은 듣는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과 저의 심령에 새겨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목은 ‘주님이 쓰시겠다면…’입니다. 하나님 만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 것이 공통된 것 같습니다. 저는 누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초신지 때 예수님 영접하고 제일 먼저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람들 앞으로 자꾸 가서 예수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신학교가서 목사가 되어 오늘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저를 이자리까지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뭔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사실은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지만 보이지 않는 주의 성령께서 그런 마음을 주셔서 우리를 사용하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고 있는지 겸손히 검토해 봐야 될 시간입니다. 바울은 큰 집에는 여러 그릇이 있지만 어떤 그릇은 귀하게 쓰임 받지만 어떤 그릇은 천하게 쓰임 받는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쓰임 받는다고 했습니다(딤후2:20-21). 주인은 그 그릇을 사용하기 위하여 집으로 가져왔을 것입니다. 실제 많은 그릇 중에 어렸을 때 제가 그릇을 깨면 어머니께서 어떤 그릇은 아까워하시고 어떤 그릇은 괜찮다고 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큰 집의 그릇처럼 쓰시는데 어떤 사람은 귀한 그릇으로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그릇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소원하십니까?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소원하시죠? 우리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귀하고 값있는 그릇으로 살아가도록 하려고 힘써 기르시고 계시는 줄 압니다.
오늘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세 번이나 말씀하시고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 가까이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두 제자들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어 나귀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1. 언약성취에 쓰임 받는 나귀의 주인 같은 사람이 되자.
1) 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저 동네에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마21:1-2).
2) 제자들이 메인 나귀로 나귀새끼를 풀고 있는데 나귀 주인이 왜 푸느냐고 물었을 것입니다. 제가 자랄 때 소 한 마리가 시골 집의 재산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귀도 대단한 재산입니다. 재산을 만지니 임자들이 뛰어나와서 왜 푸냐고 물어봅니다. 한 마디로 세상 말로 도둑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주가 쓰시겠다’라고 했더니 한 사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3) 그래서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합니다.
4) 제자들은 나귀위에 겉옷을 덮어 앉게 했고 많은 무리들이 자기 옷을 벗어 예수님 가는 길에 깔았습니다. 몇 사람은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길에 그렇게 해야 마땅한 것인 줄 알고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서 나귀의 주인처럼 진짜 주인 되신 예수님이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면 나의 가진 시간 마음 물질 달란트 은사들을 주를 위해 사용하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 가정은 이런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정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에 방향을 맞췄는지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교회가 더 좋고 생명을 드려서라도 교회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저의 사명이었습니다. 나귀의 주인은 성경에 이름없는 주인입니다. 성경에 잠깐 나오지만 현대 신앙인들이 그 분을 만나서 그 분의 인생 역사를 들어 봐야 하는 대상입니다. 자기 것은 다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귀는 그 당시에 우리의 차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푸는 것을 보고 온 식구가 나와서 왜 푸냐고 항의 했을 때 주께서 원하신다고 했을 때 그 분들이 다 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특별은총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직장에 취직을 해서 사장님께 귀하게 쓰임 받아도 힘이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오늘 본문의 나귀의 주인처럼 온 식구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당연, 필연, 절대적으로 이 나귀는 쓰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슥9:9-10)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 백성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좁히며 개인의 인생은 하나님의 주권속에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런 부모 저런 아내 남편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속에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대로 “하나님의 주권 앞에 손을 들라”는 말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신자의 삶은 성경을 따라 성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흐름을 타고, 말씀으로 편집하고, 설계하고, 디자인 하라는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5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벳바게 건너편 마을의 한 가정을 통해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가정과 후대가 2000년 전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모든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가정과 후대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세계복음화 237의 영적 파수꾼으로 서는 것이 그리스도 언약입니다. 병든 세상에 사람을 살리는 생명 운동의 영적의사로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MD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적의사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인정하는 의사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영혼과 육체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영적의사는 될 줄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예수이름으로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실의 문제 앞에 조금도 두려워 마시고 그리스도 예수이름으로 영혼의 질병 육신의 질병 생각의 질병 모든 질병이 치유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는 성경대로 이루어져 가고 개인의 인생도 성경대로 된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벳바게의 건너편 베다니에서 많은 사역을 많이 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도 살리고 혈루병 환자, 문둥병 환자에게도 베다니 마을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베다니 사람 모두 주께서 말씀하시면 “아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팔고 사면서까지도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25일 만에 건물을 사고 팔고 했습니다. 여기가 공장이여서 원칙적으로 예배를 못 드립니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받는 것도 모르고 2년동안 예배를 드렸습니다. 경찰이 왔었고 수도국에서도 왔지만 예배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2년 후에 정식적인 허가를 받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의 시선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데 귀하고 복된 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은 왜 나귀를 타고 갔을까?
1) 당시 왕은 말을 탔습니다.
말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평강의 왕, 참 왕으로 오셨음에도 말을 안타시고 나귀를 타고 가셨습니다.
2)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이지 세상의 권력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군중들은 말씀(사9:6)을 모르고 있습니다.
3) 군중들의 오해
부모에게 배워 암송은 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평강의 왕’으로 알지 못하고 로마의 속국에서 풀려 나게 하는 왕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군사력으로 활동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해방자’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가셨습니다.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을 자기기준으로 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왔고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이 풀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구약성경에도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 내용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4) 군중들은 예수님이 오신 참 목적을 모름
나귀는 동물로 말하면 귀한 존재도 아니고 영적으로 말하면 더 그렇습니다.
출13: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나귀의 첫 새끼’ 여기서 장자권이 나옵니다. 나귀의 첫 새끼가 부정해서 어린 양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우리는 모두 나귀처럼 원죄를 안고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지 못한 인생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모르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잉태되기 전부터 죄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죄사함의 축복이 어찌 그리 크냐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구원을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받을 수 없는 원죄를 해결 받고 하나님을 만나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 해방 받은 큰 구원받은 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 곧 나귀를 타고서 예루살렘에 가신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있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타고 예루살렘에서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얼마나 그 나귀의 주인은 복 받은 사람입니까?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니까 아무 말도 안하고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일거리를 맡기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안 하더라도 누군가가 합니다. ‘나 없으면 이 교회가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께서 쓰시기를 원하실 때 하나님께 드리는 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귀의 주인은 이것을 깨달었습니다.
3. 왜 나귀를 사용했나?
1) 죄를 가진 나귀입니다.
양을 통해 죄사함 받지 않으면 죽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2) 나귀는 겸손합니다.
보기에도 측은합니다. 그런데 순종에는 백 프로입니다.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태어날 때 나귀처럼 원죄를 안고 태어났지만 예수님이 사용하고 원하실 때 그 나귀처럼 겸손히 순종하며 헌신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예수님은 나귀를 타셨을까? 세상 왕은 백마를 탔지만 예수님은 연약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는데 나귀는 겸손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순종을 표시합니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 끝까지 헌신합니다.
성경에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바울이 우리 중에 부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형제들아, 너희 부르심을 봐라 우리 가운데 능력 지혜 문벌 좋은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2세 3세 되면 지혜 능력도 있지만 1세는 능력이 없을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가운데 부르셔서 증인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어 기름 부어 넘치도록 세계복음 화를 위해서 후손들에게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후대들이 보기에 우리 부모들이 하나님께 충성된 자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복을 받았구나 하고 생각하라고 증거를 주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잘해서 그렇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미련한 자를 통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통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자를 통해서 멸시받는 자를 통해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왕이신데 백마를 타고 가셔야 하는데 나귀를 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랑할 것이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고 부족하게 태어났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우리가 설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라고 부르실 때 십자가 기쁘게 지고가는 믿음의 사람들로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것 만이 성령을 받고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행1:8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그 나귀의 주인과 같이 주님이 쓰시겠다고 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는 생애 절대로 사람들에게 도움 받는 인생이 아니고 사람을 살리고 돕고 힘을 주는 믿음의 사람들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국가에도 유익한 백성이 되게 하시고 땅 끝까지 이르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축복 된 제자들로 역사하옵소서.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