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 집중된 절대제자(마 10:34-42)
[02282021]그리스도께 집중된 절대제자(마 10:34-42)
오늘 읽은 이 말씀(마 10:34-42)이 여러분 영혼 속에 잘 새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기준이나 우리 상식으로 참 이해하기 힘든 본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집안 식구인데 원수가 가정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며(사 9:6)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는데(마 5:9) 오늘 본문은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10:34).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아닙니다. 의미를 바로 알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은 아주 발달했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게 평화로운 삶은 아닙니다. 특히 펜데믹으로 인해서 자유로워야 되는 입술과 코까지 막아야 하는 불편한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공감하지만 제가 자랐던 6-70년대에 비교하면 지금의 경제는 대단히 풍성합니다. 그런데도 어렵다고 하는 것은 뭔가 오해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안고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는 환경이나 마귀에게 속힘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자기 스스로에게 속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주셨지만 속힘을 당해서 굉장한 어려움을 당합니다.
언약의 백성은 이 세상의 명예, 재물, 권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은혜 중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이 갖지 않는 믿음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받을 수 없는 믿음입니다. 주를 믿는 믿음, 주님이 약속한 그 언약을 믿는 믿음 속에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인생의 승리자들이 배경이 좋거나, 학식이 있어나, 뛰어난 달란트가 있어서가 아니였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고 당당히 믿음으로 나아가 인생에서 승리한 발자취를 남긴 줄 믿습니다.
1) 요셉 – 어릴 때 붙잡은 언약적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2)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 믿음으로 살다가 불못속에서도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3) 다니엘 - 왕의 신 앞에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다고 굶주린 사자 굴에 갇혔지만 사자의 위협을 전혀 당하지 않았습니다. 포로로 끌려 갔지만 시작도 믿음 인생의 결론, 본론도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몰랐을 때는 내 육신 하나 보호하고 싶어서, 가정 식구 몇 사람 보호하려고 몸부림치며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빼앗길까봐,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어서 계속 염려하면서 머리 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영접한 순간 그와 같은 삶은 쓸데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 떠난 물고기, 뿌리 뽑힌 나무처럼 죽은 자와 같은 인생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선택받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날마다 순간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이 고민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의 영혼 앞에, 인격 앞에, 삶 속에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나의 인생은 누구로부터 만들어졌는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마귀의 권세는 고통의 슬픔의 저주와 재앙의 인생입니다. 미래를 놓고 힘쓰고 울며 참아도 참된 행복은 없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임을 믿고 고백할 때 참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발견하고 은혜 속에서만 살아가도 우리는 부족함이 없을 줄 믿습니다. 다윗은 장인의 계략속에 3000군대를 이끌고 죽이려 쫓아왔지만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기에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 중에 기적인 줄 믿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집중 된 절대제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뛰어나기를 소원하고 나타내기를 소원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이 무엇인지? 좀 더 사실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지만 내 노력, 내 수고, 내 열심으로 살면 행복할 줄 알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 그 곳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만으로 살아가도 우리는 차고 넘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른 곳에서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 속힘 당하고 환경에 속힘 당하고 세상 것에 속힘 당해서 그렇지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의 가치를 안다면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마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 마음, 생각, 영적 지식 속에서 완전 각인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 믿어도 인생승리가 보장된 줄 믿습니다. 제자를 파송하시며 여러 권면을 하셨습니다.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이해가 됩니까? 예수님은 평강의 왕(사9:6),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컴음을 받으리라(마5:9), 제자들에게 “그 집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마 10:12-13 )고 하셨는데 왜 원수가 가정에 있다고 하시며 가정의 불화를 만들어 내실까요? 예수님이 우리 가정의 불화를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화평, 인간적인 화평을 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평화로운 삶을 산다 할지라도 100년 인생이면 끝납니다. 정말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그리스도로 영접했다면 생각, 마음, 삶이 바뀝니다. 종교속에 머물기 때문에 지금도 나 중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내 성공, 내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물론 수고하고 땀 흘려 어느 정도까지는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복이 끝나면 참평화가 있습니까? 더 큰 어두움, 더 큰 욕심이 찾아옵니다. 마음에 참평안이 없습니다.
1. 그리스도께 집중 된 제자
1) 주신 것을 바로 사용하는 자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예수님이 검을 주러 오셨습니다. 검은 주로 싸울 때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검을 주러 오셨다는 것은 적의 존재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부모와의 관계, 혈육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수님 믿고 나서 복음 모르는 혈육보다 복음 가진 남이 더 소통 잘 되고 굉장히 힘이 되고 하나님 나를 위해 함께 가는 한 지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복음 모르는 혈육이 복음을 방해합니다. 사람은 가정 속에서부터 행복을 누려야 하는데 원수가 가정에 있다고 합니다. 가정식구들이 나에게 평안을 못 주는데 누가 화평을 줄 자가 있습니까?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와 화평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는 계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집에 가서 고민거리, 걱정거리를 세어 보세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식구들에게 있는데 기대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을 다 끊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세상의 왕은 우리 인생을 불행케 하는 자입니다. 성경에는 그 신을 ‘세상 신’이라고 합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라고 말합니다. “너희들이 정말로 화평하려면 바로 너희들의 인생을 속이는 더러운 귀신 권세를 꺽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2) 이 땅의 모든 문제는 근본문제에서 시작.
이 땅의 많은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근본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근본문제가 크게 보이지 않으면 자꾸 작은 문제 속에 갇히게 됩니다. 문제의 포로가 됩니다. 그 근본문제가 하나님을 떠난 문제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든 문제입니다. 물 떠난 물고기는 아무리 힘 센 고래라 할지라도 그때부터 죽는 것입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하는 피조체입니다.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혜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말씀의 불순종이 원죄입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사람은 죄값을 치러야 되기 때문에 죄값으로 고난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죄값의 마지막은 음부라는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죄값으로 가문마다 흐르는 저주와 재앙의 권세 아래가 고통 당합니다. 지옥의 저주, 민족의 저주, 개인의 저주가 있습니다. 빨리 가문의 저주도 발견하고 지역의 저주도 찾아내어 복음 사상으로 바뀌어 가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만으로 차고 넘칩니다. 그리스도께 집중 된 절대제자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원죄가 해결되었으며, 세상 신을 완전히 진압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자존심을 가르칩니다. 자기 존재가치가 너무 약하니까 사람들이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자녀 된 자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 받고, 원죄에서 해방 받고, 하나님 만나 사단의 권세를 제압할 수 있는 검이 있음에 자부심 갖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보면 너무 연약하지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검을 주셨습니다. 검이 있다는 것은 원수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3월은 기도의 달입니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검으로 인본주의, 자기 편리주의, 자기 성공주의를 잘라내는 것이 신앙생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마음껏 활용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마10:1) 육체의 질병은 의사한테 가면 대부분 치유됩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질병은 어떻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주신 권세를 분명히 활용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월부터는 활용한 증거들이 임할 줄 믿습니다. 문제를 찾아내서 하루에 의도적으로 3번씩 해보시기 바랍니다. 남편문제, 자녀문제, 나의 문제도 아니고 창3부터 흐르는 원초적 문제임을 알고 ‘십자가의 도’ 복음으로 결박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행복하게 사세요. 주님이 주신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2. 하나님의 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절대제자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정권대사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권세를 가지고 승리할 수 밖에 없는 보장된 언약의 백성임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절대로 빼앗을 자가 없는 줄 믿습니다. 제자들의 자긍심을 높이셨습니다. 존재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자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하는 여러분! 어마어마한 하늘 축복받은 자 인 줄 믿습니다.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처음부터 모든 일에 성령의 인도, 역사 속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만남도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값진 만남으로 교제하시길 바랍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가 지혜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자를 대접하는 자도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 모두가 함께 세계 복음화의 언약 아래 증거 있는 ‘그리스도께 집중 된 절대제자’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육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며 영원히 이런 육체의 삶을 살 줄로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생의 축복이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남는 생애 예수님을 믿기 전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인생으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절대제자로 살아가는 믿음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인생 여정, 하나님 안에 복되게 살아가기를 소원하오며 그리스도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