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복 받은 사람인가? (시 Ps. 1) [02132022] 주일예배 이덕신목사
누가 복 받은 사람인가? (시 Ps. 1) [02132022] 주일예배 이덕신목사
누가 복 받은 사람들인가? (시 1편) : 이덕신 목사
서론
오늘은 시편 1편 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1년도 안돼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게 되는 시편입니다. 시편은 총 150편인데, 시편 1편은 뒤에 있는 149편을 대표하는 시편입니다. 시편 1편을 잘 이해하면 뒤에 있는 149편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22년도 신1:11 말씀을 언약으로 잡고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가 섬겼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보다 천 배나 더한 축복 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후손들에게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언약의 길을 걸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게 작은 복이라도 있어야 그 복이 후손들에게 전달되어지는 거에요. 우리가 아브라함보다 못하리라는 법은 없죠. 그런데 최소한 아브라함의 복은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조상이지만 혈통적 조상이 아니라, 영적 후손들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근원적인 축복, 대표적인 축복, 시대적인 축복, 기념비적인 축복,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복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근원적인 복은 정말 받아야, 우리 후손들이 나중에 그리워하는 부모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럼 근원적인 복이 뭡니까? 마16:16이 고백되어진 것이 근원적인 복이에요.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어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누가 뭐래도, 요1:12,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해야 돼요. 고후5:17의 주인공이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도바울을 통해서 전했던 주님의 말씀,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고 사는 자들이에요. 이미 우리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니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줄로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영광스러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롬8:17에 있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유산을 받을 만한 상속권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보좌의 혜택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죽으실 분이 아니시니까, 상속을 미리 주는 거에요. 그래서 이 축복을 미리 볼 수 있어야 돼요. 미리 보고, 미리 소유하고, 미리 누리고, 미리 정복하고, 미리 성취한 혜택이 전무후무한 보좌의 혜택인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것을 눈치 채고 아들을 달라고 할 때, 아내와 상의하지도 않고 드렸는데, 이 것이 엄청난 믿음이에요.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늘 보좌의 혜택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시편에는 하님의 복이 무엇인지, 그 복을 받는 길이 무엇인지, 많은 인생사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시편 1편은 저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많은 말들을 하죠. 그러나 우리는 복 받기 위해서, 평안을 찾기 위해서 교회 오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감사를 가지고 예배하러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단의 말씀, 성경을 통해 잘 못된 자신의 고정 관념을 교정을 해야 돼요. 혹시 내가 많이 내서 많이 받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셔야 해요. 우리는 많이 받은 것을 믿고 많이 내야 하는 거에요. 믿음으로 이미 많이 받았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거에요. 그것이 신앙이에요. 그래서 오늘 제목이 “누가 복 받은 사람인가?”에요. 여러분들이 나는 복을 받은 사람인지 체크해 보세요.
1. 관점이 다르다.(시1:1)
1) 가치관 - 오늘 시편 1편 기자는, 제일 먼저 ‘복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말했어요.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내용이죠.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 세 가지 관점이 달랐어요. 첫째, 가치관이 달랐어요. 가치관이 물질에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물질이 많이 오는 것을 기준으로 생각과 마음이 그 쪽으로 가요. 가치관이 자기의 자존감에 둔 사람은 물질 보다, 자기의 맘에 들지 않는 경우에도,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방향으로 살아갑니다. 악인들의 꾀를 쫓는 사람들은 가치관이 없습니다. 자기의 자존감도 없어요. 악인은 지난번에 말씀 드린 것처럼, 시10:4에, 하나님이 없다는 자가 악인이라고 했어요. 모든 면에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거에요. 자신의 것을 하나님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올바른 신관이 없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상 속에 있는 거에요. 부모가 그렇게 살아가면 자녀들도 그대로 배워요. 우리는 이것을 영적 대물림, 흐름이라고 해요. 보이지 않는 의식(사상) 속에서 보이는 것으로 노출되는 거에요. 우리 입술로, 삶으로. 창 3장 타락 이후에 우리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는데, 그 양심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양심이 우리의 의지력을 리드할 수가 없어요.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행동은 그렇게 하고 있고, 때로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거에요.
2) 신관 - 창 39장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날마다 유혹했어요. 창 39:9에, “내가 어찌 이 큰 죄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라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고백했어요. 그랬더니만 보디발의 아내가 더 심하게 유혹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같이 있지 않고 피했어요. 그래서 한 마디로 요셉의 가치관은 육신의 쾌락이나 자기 인생의 성공에 있지 않았고 분명한 신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내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관자 하나님! 내가 설령 낭떠러지에서 떨어진다 할지라도 나는 그리스도를 배반치 아니하리라! 이렇게 심지가 굳어야 돼요. 제 친구들을 봐도 사람처럼 제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갈대 같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무게중심이 있어요. 어떤 사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관계도 아무렇게나 안하고,
직장 일도 그렇고, 사업도 꾸준하게 해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생관, 가치관을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거에요. 죄인들과 같은 길에 서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친구 관계도 분별해서 해야 하고요. 그 사람들은 매사에 지혜로운 분별력을 가지고 선택하는 거에요. 신30:15에,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는데, 네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 이런 말이죠. 그 선택이 자기의 숨은 인생관을 따라 가는 거에요.
3) 종교관 - 그리고 오만한 자와 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 것, 이것은 일반적인 종교관이죠. 복음과 종교, 이게 아니고 일반적인 종교관에 따라서 자기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전통 유대인 의사는 안식일 시작 해가 질 때 되면 수술 하다가도 수술 안 하고 갈 정도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거에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해요. 복 받기 위해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복 받은 사람들이 이렇다는 거에요. 물질관도 아니고, 인생 성공관도 아니고, 명예나 이름, 권세가 복의 기준이 아니라는 거죠. 성경의 복과 세상의 복 개념이 틀려요. 육신적인 기준의 복이 아니라, 똑바로 목표를 향해서 곧게 걷는 것, 여기서 나온 것이 에쉬레이 복이에요. 유대인들은 바라크라는 보이는 세상의 복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죠. 그래서 가치관, 인생관, 종교관이 하나님 안에 들어 와 있는 자들이 복 받은 자들이에요. 구약의 유대인들 가정교육은 두 개의 기둥이 있어요. 첫째는 신명기 6장에 나오는 ‘שָמָע (쉐마)’에요. 순종이라는 히브리 단어가 ‘ שָמַע (샤마)’에요. 순종은 잘 들을 때 할 수 있는 거에요.
2. 복 있는 자의 체질
복 있는 자의 자리로 옮겨가는 길이 있어요. 2절과 3절 말씀의 주인공이 되면 됩니다. 진짜 복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거에요.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보호막과 같은 거에요. 우리가 처음 맞는 새 날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르잖아요. 시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92에는,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말씀이 즐거움이 된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영혼의 즐거움은 주의 말씀 가운데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가정교육, 첫째, 율법이 하나의 기둥이 되고, 둘째는, hallel(할렐교육)이라고 해요. 찬양이라는 거에요. 주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분을 찬양하라는 거에요. 이것이 유대인들 교육의 큰 두 기둥이에요. 시편 119편도 작자가 누군지 몰라요. 시 119편은 보통 성경 5,6배 정도로 176절이나 될 만큼 길게 썼어요. 그런데 주제는 하나에요. ‘율법은 너무 좋은 것이고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 거야‘ 그런 내용이에요. 시119:103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오늘 복 있는 사람은 누구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나는 정말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까, 보이지 않는 보좌의 혜택을, 보이는 바라크의 축복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사람은 영력이 있어야 되고, 지력이 있어야 되고, 체력이 있어야 되고, 경제력과 인력도 있어야 돼요.
3. 시냇가에 심은 나무
그런 사람들은 더 구체적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고 했어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철 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했고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고 했어요. 정말 복 된 나무라는 거에요. 이스라엘은 가뭄이 많아서 시냇가에 심지 않으면 나무를 심어 놔도 죽어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가뭄이 와도 시냇가 밑에 물이 흐른다는 거에요. 그 나무는 심은 주인이 있다는 것이고, 그 주인은 나무에 대한 소망, 목적과 기대 속에 심는 거에요. 내가 우리 집 앞에 무궁화 한 그루를 옮겨 심었어요. 원래 그 문으로 잘 안 다니는데, 그 나무 보고 싶어서 아침, 저녁으로 그 문으로 나오는 거에요. 그 주위에 단풍나무 씨앗이 떨어져서 봄 되면 묘목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없애버렸어요. 내가 심은 나무는 지지대를 세워주고, 물 주고, 거름 주고 있어요. 어떤 날을 기대하고 있느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과 충분함의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인생을 되어지는 인생이라고 해요. 사랑하는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복 없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복 없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 같다고 했어요. 정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여호와께서 인정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이 말씀에 옛날에 걸렸어요. “하나님, 부족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아들로 삼았으니, 목사로 삼았으니.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어요.” 정말 여러분 이 마음이 심령 깊은데서 울려나와 한 번 사는 인생, 이 땅을 정복하고 우리의 후대들에게 천 배나 많은 복을 전달해 주는 그런 부모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자녀로 어둠에 있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아직도 해방된 운명 속에 잡혀 속힘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갈보리 십자가의 언약 가운데, 감람산의 언약을 잡고, 마가다락방의 성령의 사람들로 축복 하옵소서. 하나님 주신 사명과 부르심의 축복을 누리면서 주신 사명을 귀히 여길 줄 알고 그 사명 앞에 순종하는 믿음의 종들로 역사 하옵소서. 그 후손들에게 천 배나 많은 하늘의 복과 이 땅의 복이 차고 넘칠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