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적 결단 뒤에 오는 인생 (룻 2장) : 이덕신 목사
천명적 결단 뒤에 오는 인생 (룻 2장) : 이덕신 목사
오늘은 룻기 2장의 말씀을 가지고 ‘천명적 결단 이후의 나의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눈을 감고 묵상하는데 갑자기 서울이나 동경의 지하철 많은 사람들이 아주 분주하게 왕래하는 광경이 생각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분주하게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마다 자기의 목표가 있기에 그 목표를 향하여 분주하게 달려 갑니다. 여러분의 개인 시간표를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되는대로 살면 안 됩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동물과 달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흙으로 육체를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동물은 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의 사람으로 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영적 존재일때는 하나님과 소통했습니다. 그런데 창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떠난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영이 하나님과 소통될 수 없는 죄인의 영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 다 자기 중심이고, 하나님 음성도 못 듣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육체는 살아 있는데 영은 죽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육체를 따라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죽음의 날이 옵니다. 그 죽음 이후에 몸은 흙으로 가지만 영은 하나님의 영이 없기에 하나님께 갈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없는 불신자는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옥의 주권자가 그 불신자의 아버지 마귀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해방 받은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 구원 받은 자요, 성도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구별된 자입니다. 구별된 자는 구별된 삶을 사는 자입니다. 오늘을 주님의 날, 성별된 성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 자녀인가? 하루에도 몇 번 씩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생각이 복잡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보다도 자기 꾀를 가지고 살아가려 하기 때문에 인생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내신 그리스도의 언약 가운데에서 그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잘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 모든 문제의 답은 바로 말씀을 통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 된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 인생을 주장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말씀을 따라 가는 인생을 ‘언약의 여정의 인생’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신분도 중요하고 가정배경도 중요하지만 이 말씀은 가정배경, 신분, 성격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임무는 어떻게 하면 이 기록된 말씀을 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돈해서 전할 것인가? 계속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외적인 힘, 건강, 경제력, 지력도 중요하지
만 모든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영력이 더 중요한 줄 믿습니다. 영력이 있으면 현실의 어려운 문제를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가운에 왜 자꾸 시험에 들고 불평하며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가? 바로 영권이 없어서 입니다. 흑암이 와서 자꾸 자기의 상처를 건드립니다. 그래서 자꾸 슬프고, 원망스러워 주저앉고 마는 인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명적 결단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룻의 영적상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룻이라는 여인은 영적 상태가 아주 건강했습니다.
1) 언약적 분별력과 결단
① 룻은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부터 이주해 온 유대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입니까? 결혼한 지 얼마 못되어 그 남편이 죽었습니다. 시동생도 같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가문의 남자들은 다 죽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이 모여 사는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② 그러면서 두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가서 살라고 권유합니다.
③ 결국 오르바라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권유를 못이기는 척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④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인생을 생각했던 며느리입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사람은 나 위하여 사는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인생이기에 언약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르바는 자기를 떠나라는 나오미의 말을 듣고 떠났지만, 룻은 영적인 능력이 있었기에 나오미의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천명적 결단의 딸입니다.
룻과 오르바는 같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같은 가문에 결혼해서 같은 상황이 되었지만 룻은 영적이 눈이 열린 자입니다. 불신자들은 세상 배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배경이 필요 없습니다. 영안이 열리면 하늘 보좌의 혜택을 입는 줄 믿습니다.
시어머니가 룻에게도 가라고 부탁해도 룻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룻은 나오미가 가는 곳에 나도 가고, 당신이 머무는 곳에 나도 가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룻1:16).
시어머니인 나오미와는 상관없이 며느리인 룻의 인생은 룻이 만들어 가는 줄 믿습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드는 겁니다. 목사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이 고백만 해도 목사님이 받은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고향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룻은 자기가 분별해서 자기가 선택해서 자기가 결단해서 왔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절
대 원망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분별해서,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결단한 대로 만들어진 것이 오늘의 인생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이 레마로 역사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레마는 기록 된 로고스 말씀이 사실적으로 역사, 체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로고스 말씀을 내가 믿고 받아 들이고 확신할 때 주의 성령은 그 말씀을 성취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안 믿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붙잡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누가 이 말씀을 붙잡는가? 묵상하는가?에 따라서 성령이 역사합니다.
2) 먹을 것 없는 현실문제
나오미와 룻이 빈손 들고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는 마침 보리를 추수하기 시작 할 때였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이삭을 줍기 위하여 추수하는 밭에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현실문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현실문제는 현실문제입니다.
현실 문제가 찾아오면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룻은 이런 현실문제 앞에 나오미와 상담을 하면서 시어머니의 허락을 구했습니다.
2. 만남의 축복의 증인(룻2장)
1) 보아스와의 만남
이삭 주으러 간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룻의 인생은 만남을 통하여 최고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만남의 축복이 다입니다. 부모님은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도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친구,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① 룻은 이삭을 줍다가 유력한 자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이 말은 보아스는 재물도 풍부하고, 사회적인 힘도 있어서 어려운 사람을 구원해 주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 후대들을 능력 있는 남자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한 아내의 머리가 되어 지도력을 가지고 여자를 다스려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아내를 행복한 길로 안내해야 합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 구실을 해야 합니다.
② 보아스는 남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
자기 밭에 와서 추수하는 일꾼들을 만나자 마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며
그들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일꾼들도 보아스에게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룻2:4)
내가 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내게도 찾아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사는 인생 사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은 시간표따라 성취됨
① 보아스는 일꾼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여인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를 배려하여 줍니다. 그 밭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그녀를 소개시킵니다. 모압족속 여인이라는 것,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쉼터(움막)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② 보아스의 배려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8)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9).
이방인이 룻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했습니다나
나 같이 부족한 자를 목사로 세우신 하나님! 정말 주님을 위하여 살고 싶어요. 나 같이 부족한 자를 중직자로 세우신 하나님! 정말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며 살고 싶어요. 이런 신앙고백이 없이는 직책, 직분은 아무런 소용 없습니다.
이 룻은 자기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하나님 앞에 알게 되면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만 다니는 것뿐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보아스는 진심으로 룻을 축복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게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네게 온전히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가 룻에게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보아스는 하나님, 룻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의 현장을 발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나자 일꾼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려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룻2:15-16)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위하여 천명적 결단을 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세계 복음화 하는 전도자와 함께 하는 유일한 결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결단의 시작 속에 생명운동, 교회운동, 후대운동이 시작됩니다.
그냥 교인으로 끝나지 말고 충성된 자, 사명자, 사역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