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1-20)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1-20)

오늘은 연속된 마가복음 4:1-20 말씀을 통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과수원에 나무를 심는 농부는 과실이 맺기를 소망하면서 심습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는 가을이 되면 수확하는 그날을 소망하면서 농사를 시작합니다. 언어가 쉽지 않고 문화가 맞지 않는 이민현장에서 왜 새벽부터 그 현장으로 달려갑니까? 한가지입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 인생의 참가치를 모르고 참 목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참 불쌍한 인생입니다. 이민자의 삶이 어렵다고 하지 마시고 일찍부터 하나님의 목표를 붙잡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멋있는 인생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혜택을 입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하나님의 혜택을 입지 못하여 가을이 되어도 수확이 없는 인생을 사는 자가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 자녀들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돕는 인생이 바로 세상의 빛이요, 소금의 역할을 하는 인생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약 50여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마태, 마가, 누가가 공통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공관복음(共觀福音)입니다.
1.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
1) 말하고자 하는 추상적 교훈이나 원리 또는 정보를 일상생활의 낯익은 어떤 상황이나 사물, 혹은 자연 현상들을 들어 이야기함으로써 그 뜻을 좀 더 쉽고도 인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비유입니다.
2) 비유의 목적
① 빨리 마음 속에 담고 실천하도록 하는 적극적 목적이 있습니다.
②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알 수 있도록 허락된 자들만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감추시는 방편으로 비유로 말씀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들에게는 천국 복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도록 감추시는 방법입니다.
2.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1) ‘들으라’는 ‘경청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변화도 없고 응답도 없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면 야단을 칩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듣는 귀가 있는 자입니다.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먼저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9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는 찬양, 기도, 예물,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믿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감정신앙, 기질신앙은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을 따라가는 언약적 신앙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 대해 스님이 만든 기독교 영화 '산상수훈'이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초청되었습니다. 영화 ‘산상수훈’은 동굴이 주된 배경입니다. 신학생 8명이 동굴에 모여서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가령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해놓고선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셨지?’하는 물음들입니다. 만약 선악의 나무가 없다면 “그렇다면 창조된 세계도 없다. 성경에는 천지창조 후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더라’고 돼 있다. 창조된 세계가 있으니 선악의 나무가 있는 거다.” 스님도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왜 성경과 예수의 설교를 택했나?는 질문에 “성경은 경전이다. 불경도 경전이다. ‘경전’이란 게 뭔가. 진리를 써놓은 책이다. 성경도, 불경도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다. 라고 답했습니다.
3. 4가지 밭
기록된 4가지 밭을 통해서 내 마음의 밭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1) 4절에 보면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라고 했습니다.
길 가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씨가 땅 속에 묻히지 못하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림으로써 길 가에 떨어진 씨는 결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5절 말씀을 보면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사단이 그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완악하게 하여서 복음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립니다
2) 5-6절을 보면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했습니다.
곧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16-17절을 보면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돝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해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자를 가리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자기 유익을 따라 신앙생활을 한 자들은 복음을 들어서 갖는 기쁨을 오래 갖지 못하도록 합니다. 단지 종교적인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약간의 어려움만 있어도 신앙생활을 지속하지 못합니다.
3) 7절을 보면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라고 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그 자라는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19절을 보면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결실치 못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여러 가지 욕심이 그 마음속에 있어서 천국 복음이 마음속에 들어와 자라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4) 8절을 보면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0절을 보면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땅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영적 상태에 따라 열매 맺습니다.
막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좋은 마음 밭을 가꾸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떻게 해야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우리는 풍성하고 멋있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길이 있습니다.
1. 좋은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들으라’는 ‘이해하며 들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실천하라’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이해하고 따라 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받으라’는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환영하는'의 의미를 지닌 '파라데코마이'(paradechomai)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비로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을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비유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여 행복한 인생 살기를 소원하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 그 축복 받기를 소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들을 수 있는 귀 가진 자들은 들을 수 있도록 축복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 듣는 것, 받는 것의 의미를 잘 깨닫고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산 믿음의 사람들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모방신앙, 불건전 신앙, 감정적 신앙, 의지적인 기질신앙이 아니고 말씀을 글이 아닌 언약으로 믿는 축복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